나는 “꼭 먹어야 할 10가지” 같은 리스트는 잘 못 쓰는 편이다. 이 글은 그냥 한국에서 정말로 먹어 봤고, 아직도 맛이 기억나는 몇 가지를 적어 본 것이다. 대부분 혼자 먹었고, 일부는 친구들과 함께였다. 어떤 건 정말 놀라웠고, 어떤 건 지금도 못 받아들이겠다. 그냥 그렇다.
이문설농탕 · 종각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집, 보통 집이 아니었다. 이문설농탕은 1902년에 문을 열었고, 한국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식당으로 꼽힌다. 백 년 넘게 설렁탕 하나만 해 온 집이다.
처음 이 집에 들어갔을 때, 온통 외국인이었다. 앉아서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야 한 가지를 알게 됐다. 사실 다들 테이블 위에 놓인 배추김치와 무김치를 노리고 온 거였다. 국물 자체는 거의 맛이 없다.
정말, 아무 맛도 없다. 싱거워서 못 먹겠다는 게 아니라, 깔끔해서 잠깐 멍해지는 그런 맛이다. 뽀얀 국물 한 그릇에 면과 소고기 몇 점이 들어 있고, 마시면 아주 옅은 소고기 향 하나만 스치고 지나간다. 이상하게 하나도 느끼하지 않다. 직접 소금을 넣고, 파를 넣고, 김치 한 젓가락을 얹어야 비로소 이 국이 “시작”된다.
그날 나는 종각에서 혼자 먹었다. 나중에야 대충 이해가 됐다. 애초에 기본 간을 안 하는 집이고, 백 년 넘게 손님이 입맛대로 소금과 파를 넣게 해 온 거다. 이 ‘맛없음’이 어쩌면 이 집의 맛일지도 모른다.
흰고래 한정식 · 종로

친구와 한 상씩 한정식을 시키고 오리구이를 하나 추가했다. 나오는 순간 확실히 장관이었다. 칸칸이 가득 찬 젓갈들. 명란젓, 새우젓, 오징어젓, 전라도 새우젓, 그리고 온갖 절임 반찬까지.
좋은 얘기부터 하자면, 젓갈은 정말 좋았다. 전라도 새우젓이 깊은 맛이었는데, 내가 제일 좋아했던 건 작은 게젓이었다. 흰밥에 얹으면 밥 한 공기를 더 먹을 수 있었다. 곁들여 나온 명태국도 맛있었다.
이제 내가 못 넘는 벽 얘기다. 날채소는 너무 쓰고 떫어서 지금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오징어젓과 명란젓은 너무 “한국적”이었다. 끝까지 발효된 그 짭짤한 감칠맛은 나조차 감당이 안 됐다. 특히 오징어젓은 한 번 집어 먹고 다시는 손이 안 갔다.

오히려 오리구이가 판을 살렸다. 숙성한 뒤 훈연하고 구워서 껍질 아래 기름이 깔끔하게 빠져 있었다. 그날 가장 편하게 먹은 메뉴였다.
아귀 · 친구가 쏜 날

중국에서는 아귀를 먹을 기회가 거의 없는데, 이 날은 친구가 샀다. 새빨간 것이 한 접시 가득 나왔다. 콩나물을 깔고 아귀와 문어가 두꺼운 고추장 양념에 휩싸여 있었고, 양도 푸짐했다.
이 요리가 기억에 남은 이유는 양념이 아니라 아귀의 이리였다. 입에 넣으면 포근하게 녹아내리는 그 부드러운 감칠맛이, 접시 전체의 강렬한 매운맛과 묘한 균형을 이뤘다. 친구가 시키지 않았다면 나 혼자서는 시킬 생각도 못 했을 거다.
족발

한국식 족발과 중국식 족발은 완전히 다른 음식이다.
얇게 썰어 담고 흰 참깨를 뿌려 낸다. 살이 아주 푹푹 삶겨서 거의 입에서 녹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누린내가 전혀 없다는 것. 내 기억 속의 어떤 족발처럼 “조금 참고” 먹어야 하는 맛이 아니라, 깨끗해서 한 점씩 계속 집어 먹을 수 있는 맛이다. 상추에 쌈장을 얹어 싸 먹으면 한 끼에 한 접시를 그냥 비운다.
한우 내장탕 · 학교 근처 부부 가게

한국에서 가장 자주 간 집이다. 부부가 아들과 함께 운영하는 작은 가게인데, 학교 바로 근처에 있다.
솔직한 얘기부터 하자. 내장탕은 비리다. 소 누린내가 꽤 확 올라온다. 친구들을 데려간 적이 있는데 못 먹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만, 매주 갔다.
사실 나를 중독시킨 건 그 집 고추기름이었다. 진짜 고소하다. 한 번은 아들한테 고추기름을 더 달라고 하려다 “gochu oil”이라고 간신히 말했는데,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우리는 한참 손짓을 주고받았고, 그제야 그가 알아들었다. 그 후로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면, 말할 것도 없이 그가 먼저 고추기름 병을 가져다줬다.
그 집 김치도 특별했다. 사과로 담가서 소금을 거의 안 넣는다. 맛이 담백하면서 은은한 과일 향이 있어서, 밖에서 파는 그 짠 김치와는 완전히 다르다.
어떤 가게가 당신을 붙잡는 건, 대표 메뉴가 아니라 먼저 가져다주는 고추기름 한 병이다.
소갈비 맑은탕 · 다른 집

이건 다른 집의 소갈비 맑은탕이다. 위의 내장탕과는 다른 얘기다.
재미있는 건 완전히 반대 방향이라는 점이다. 비리지도 않고 팍 치지도 않고, 깔끔하다. 냄비에 파와 소고기밖에 없는데, 맑고 싱거워 보여서 볼품이 없는데도 이상하게 숟가락이 멈추지 않았다. 한 숟갈 한 숟갈 국물을 바닥까지 비웠다.
내장탕이 한 방의 “기운”으로 나를 붙잡았다면, 이 맑은 국은 “깨끗함”으로 붙잡았다. 같은 소인데 두 극단이다. 둘 다 좋아한다.
돼지고기 오징어 볶음 · 여의도

여의도의 아주 유명한 집인데 지하 1층에 숨어 있고, 갔을 때는 자리가 꽉 차 있었다.
센 불에 볶아내서 돼지고기와 오징어가 두꺼운 빨간 양념에 휩싸여 있고, 불맛이 제대로다. 솔직히 이 요리는 내게 굉장히 “한국식 중국 요리”처럼 느껴졌다. 그 불맛, 밥을 부르는 그 힘이, 내가 익숙한 중국 볶음 요리와 통하는 구석이 있다. 혼자 타국의 지하 식당에서 이런 맛을 먹으면, 살짝 현기증이 난다.
솥밥 / 누룽지탕

처음엔 누룽지탕이 반쯤 의심스러웠다. 돌솥에서 밥을 덜어 낸 뒤 남은 누룽지에 뜨거운 물을 부어 국처럼 만든다고? 그게 맛있을 리가?
그런데 한 번 먹어 보니 바로 빠져들었다. 그저 소박한 쌀 향에 고기와 파 맛이 살짝 얹힌 정도다. 어느 것 하나 튀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릇 바닥에 남은 살짝 태운 듯 고소한 누룽지가, 그날 식사에서 내가 가장 기다리던 부분이 됐다. 어떤 맛은 복잡하게 쌓아 올려야 나오는데, 이건 아니다. 그냥 깨끗하고, 마음이 놓이는 그런 맛이다.
마치며
한국에 있는 동안 맛있었던 것, 맛없었던 것, 도저히 못 넘었던 것까지 전부 적어 뒀다. 평생 못 받아들일 것 같은 것도 몇 가지 있다(그 오징어젓 한 젓가락 같은), 그리고 매주 변함없는 습관이 된 것도 있다(비려도 비린 그 내장탕처럼).
음식은 꽤 정직하다. 당신이 타국에 있다고 해서, 동화되고 싶다고 해서 갑자기 당신 입맛에 맞아 주지 않는다. 남는 건 진짜로 당신과 맞는 것이거나, 아니면 그 가게에 당신이 고추기름을 좋아한다는 걸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는 경우다.

